2023. 6. 22. 14:20ㆍ자작시(詩) 와 문학 Poetry and Literature
탕자의 눈물
힘겨워 지친 발걸음
늘 걸었던 언덕에서
바라보는 고향 집
나의 눈물 현미경 되어
지나온 잘못 세밀하게 떠오른다.
먼 거리 동구박 언덕길
날마다 바라보며
흘리시는 아버지 눈물
망원경 되어
아들 향해 달려 나간다.
오, 주님!
나 돌아와 아버지 마음 되어
안아줌의 눈물 되어 흐른다.
1. 나의 생각 말하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인이든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집을 나간 아들 탕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가끔, 아니 날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지루함에 낙심할 때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잘 알고 있듯이 아버지로부터 받을 상속재산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탕진하고 돌아온 이야기 속에 세상은 나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주인공이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탕자가 사회와 직장과 일터, 그리고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의 나도 예외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나 같은 사람을 무한 신뢰로 기다려 주시는 분, 과연 누구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의 주님”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탕자는 세상 살아갈 동력을 상실한 채 마지막 남은 희망,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심의 동기를 행동으로 옮기는 마지막 발걸음이 집에서 늘 바라보고 생활하며 지냈던 동구박 언덕길 위에 서는 순간, 저 멀리 아버지의 집 늘 함께하였던 형제들과 친구들 그리고 고향의 모든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는 순간 탕자의 벅찬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즐거웠던 지난날의 모습과 크로스 하여 자신의 못남을 영화의 장면들처럼 지나가고 있었고, 감달 할 수 없는 눈물이 현미경 되어 세밀하게 떠오름과 동시에 회개의 눈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 탕자같이 하나님 곁을 떠나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로 아파하고 아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주시는 말씀처럼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와야 산다는 것이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자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에 대한 “전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믿고 있었던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멀리하여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인의 감소에서 부흥의 회복에 마중물이 되고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해 봅니다.
노후의 몸으로 집을 떠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볼 때, 내 자식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으로 역할을 바꾸어 보면 눈의 시력도 그리 좋지는 않았을 텐데 동구박 거지꼴로 나타난 탕자를 단숨에 알아보고 달려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움의 눈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망원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탕자가 흘린 눈물의 렌즈는 현미경이었지만 아버지가 흘린 눈물의 렌즈는 망원경이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내 자식은 한눈에 들어오는 체험을 하셨던 분들은 이해되리라 생각됩니다. 부모 된 자라면 아버지의 눈물의 망원경에 나타난 아픈 손가락 탕자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 우리는 인생을 거는 그것이 아닐까요.
※ 마음에 은혜가 되시는 작곡가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탕자의 눈물”에 대한 찬양 작곡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2. 누가복음 15:11-24 탕자의 눈물, 아버지의 눈물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부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기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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